Woman & Word

즐거운 가난.

전쟁과 평화 2016. 2. 29. 19:41


 

 

한 몇 십 년 동안, 주변이야 어찌되던 갖은 방법으로라도 나름 잘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곳이 한국이다. 누군가 조장 했 다기 보다. 믿을 곳 없는 한국에서 살자니 스스로 그렇게 간 요인도 크다.

 

그러기에 각자 생존은 급급하고, 아이들은 차별화되게 특수목적의 학교나 국제학교에 보내 같은 또래 애들과는 삶을 구분 지으려 부모들은 갖은 희생을 하고 산다.

 

경제는 나날이 추락의 길로, 이웃 주변국과 비교해도 경쟁력 상실의 국가로 이미 규정 당하고 있다. 50년대 아시아의 진주라던 화려했던 필리핀의 영광이 마르코스라는 독재를 시작으로 끝 모를 추락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또한 한때 남미의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도 잘못된 경제체재와 독재로 많은 시간 이류 국가로 되어 있는 꼴을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보고 있다.

 

즉 소수가 모든 것을 가지겠다는 욕심의 결과이고 그것을 막기 위한 사회통제 시스템도 상실했고, 대중들은 철저히 개인 삶 추구에만 몰두하며 어두운 면은 보지도 생각하기도 싫어하여 사회 돌아가는 것에 철저한 방관자가 된다.

 

1 퍼센트의 소수가 더 오만방자해지고, 자신감을 가진다. 이제는 여론수렴, 선거 이런 거 다 필요 없는 오롯이 소수만을 위한 그들의 국가, 그것은 독재에 매료되고, 재벌을 위하며, 파쇼의 길을 간다. 그것의 결과가 필리핀, 아르헨티나를 열거한 거다.

 

아니 이들은 싱가포르의 리콴유가 매력덩어리일 것이다. 국민소득은 높여주고, 이를 세계에 과시하고픈 파시스트로 남고 싶을 것이다. 왜냐 한국은 자기네 거라 생각하니까.

그러나 싱가포르 독재자 리콴유의 이면에는 사회통제를 위한 사회 전반적 투명성이 강력했다. 거기서 얻어지는 막대한 재원으로 주택, 의료, 교육을 아우르는 복지를 이룩하고 세계에 회자된 것이지 한국처럼 경제가, 사회투명성이 이리 개판이지는 않았다.

 

지금 소수의 넘치는 부를 위해서 다수가 희생되어야 하는지, 그 다수도 분열되어 위에 나름 잘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게 과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지, 그러려고 분에 넘치는 등록금을 써가며 고등교육을 배웠고, 결국 그곳에서 배운 것은 국가 사회의 부조리만을 넘치도록 느끼고 나와, 열패감속에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다수의 우리는 뭔가 결정해야 한다. 진정한 행복의 길이 되지도 않을 소수로 지향하기 위해 도덕이며 윤리, 인간의 덕목을 다 팽게 처야 할 정도인지,

 

아무튼 기약 없는 소수에 진입하려하는 불행하고 찌질한 부자의 길을 추구 할 것이냐에, 다수의 행복을 위한 국가가 된다면 어떤 시기에 가난하더라도, 설사 고난의 시간이 기다려도, 후일을 위하여 당분간 즐거운 가난을 선택한다.

 

 

행복의 나라로 / 노래, 한대수

 

https://youtu.be/k06FbWRNo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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