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이런 희귀음반, 방의경 1집

전쟁과 평화 2023. 1. 31. 13:40

1970년대 초, 서울 명동 YWCA 회관에는 청년문화 공간 ‘청개구리’가 있었는데, 청개구리 창립멤버이자 1세대 포크 싱어송라이터인 서울대 김민기와 역시 싱어송라이터인 이대 방의경이 노래로 시대의 아픔을 달래던 공간이다. 방의경은 회관의 강당에서 공연을 앞두고 경기여고 교복 차림의 후배 양희은에게 노래를 지도하기도 했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방의경의 이름은 잊혔지만, 그가 작사한 번안곡 ‘아름다운 것들’은 지금도 널리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이대사대부중·고 6년간 이미 대표 가수였다. 이대에 입학해서도 강의실보다는 청개구리에서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덕분에 72년 첫 음반 ‘내 노래 모음’이 나왔다. 19살 때 쓴 ‘겨울’을 비롯, 포크의 명곡으로 꼽히는 ‘불나무’, ‘풀잎’, ‘친구야’ 등 12곡이 담겼다. 혼자서 직접 작사·작곡·노래에 기타반주까지 해낸,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첫 여성 싱어송라이터 독집 음반이다. 하지만 발매 1주일쯤 뒤 이미 공안당국에서 압수해간 뒤였고 판매는 물론 방송 금지곡이 됐다. 항의조차 할 수 없었던 독재 시절, 그는 한층 깊어진 슬픔을 담아 74년 2집 음반을 준비했다. 그러나 비밀 아지트 녹음실에 숨어 애써 작업한 음원들은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한 채 사라지기도 했다. 그 바람에 그의 1집은 현재 컬렉션의 끝이라 불리며 희귀음반의 대명사로 남아, 음악적 완성도뿐 아니라 대중음악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그에게 음악을 빼앗아 간 결정타는 74년 민청학련 사건이었다. 그저 순수하게 노래했을 뿐인데 저항 가수가 돼 있었다. 심지어 방의경의 노래를 부르던 친구들이 끌려가는 현실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결국 76년 약혼자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 사이 독재자는 죽고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뤄진 고국에서 그는 포크의 전설이 됐다.

 

세월이 흘러 한 포크마니아 카페의 도움으로 1집 음반을 찾았고 분실된 2집을 다시 만들어 한국포크 음악의 유산으로 남기기로 하여 2022년 복원 LP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한국 민중 가요사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사에서도 무척 의미 있는 사건이다.

 

 

불나무(1972) LP / 방의경

 

https://youtu.be/4gFqar98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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