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History, Religion

로마강성의 바탕은 다문화.

전쟁과 평화 2016. 1. 26. 17:43



그것은 시민권이고 용광로 같은 민족 혼합정책이다. 우리보다 다문화 정책을 2000년 전 부터 해 왔다고 할까,

로마는 정복한 피지배민족에게 로마시민과 구별 없는 시민권을 부여했는데, 그것의 위력은 '카르타고''한니발' 습격으로 3차에 걸친 대전투에 로마가 참패해서 약자 동맹국들이 강한 한니발 권력에 이동할 것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즉 로마와 다른 민족이라도, 로마의 시민권은 그들의 고국으로 인식하여 절체절명의 로마를 위해 목숨 받쳐 싸웠다.




 

고대 한니발 전투로 로마는 패망의 위기에서 대제국으로 돋움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초대 로마황제는 북아프리카 한니발의 카르타고 후예출신이다.

 

이태리의 민족구성을 보면 전혀 다른 민족의 혼혈임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민족구성의 이질성과 종교에 대한 관용으로 '다민족(다문화)' '다종교 국가'인 셈이다.

 

사실 침략의 로마로 상징되지만, 몇 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민족들이 스스로 로마시민이 되고자 자청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로마의 범위가 확장되었고 로마는 이들 동맹국가의 보호와 같이 잘사는 정책을 추구하여 천년이란 시간을 이어 온 것이다.

 

또한 로마는 노예에 대해서도 정당한 급료를 지불했고 존중했으며 10년의 노예생활을 마감하면 자유인으로 풀어줬다고 한다. 시민까지는 아니더라도.

 

후에 노예의 후예들이 시민권을 획득한 경우가 많았으며 이들이 로마 집정관(국무총리나 수상계념)이 되거나 원로원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건 로마 개방성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이다.

 

과거 삼국시대, 고려시대에 고대 무역이 활성화되어 세계교류가 활발했을 때 각국은 외국인 구역을 지정해 주고 결혼도 장려하여 한 동안 혼합 정책을 추진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신라시대 처용가의 처용이 서역지역과 교역이 있어 와서 이슬람 상인인 색목인으로 보는 관점. 백제는 장보고에 의한 동남아와 서역상인과의 교류역사, 그들의 정착. 고구려도 그러했던 기록 등을 보면 다문화정책이 꽤 오래전에 있었고, 어느 순간 단절된 거 같다.


    



 

이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민족이 조선족, 고려인 제하고도 100만이 훨씬 넘습니다. 역사를 살펴봤을 때나 세계인으로 우리를 규정할 때 외국인을 대하는 관용과 열린 마음이 한국을 강한국가로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Rome / Song By, Dschinghis Khan

 

https://youtu.be/vGJIXoSBXe4